순국선열의 날 나를 있게 해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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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11. 12. 10:37
저는 순국선열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초등학교 때 조회가 생각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월요일마다 운동장에서 조회를 했는데요. 그때 순서중 하나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었습니다.
음악이 나오면 고개를 숙이고 약 20초정도 묵념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냥 하니까 했는데,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인 것이죠.
조상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역경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주권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한 날이 있습니다. 바로 순국선열의 날인데요. 순국선열의 날은 다른 기념일 보다 더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더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1. 순국선열의 날이란
순국선열의 날이란 국권의 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들의 희생전신을 후세에 전하고 그들의 얼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입니다.
순국선열의 뜻은 목숨바칠 순(殉), 나라 국(國)먼저 선(先), 세찰 열(烈)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 또는 열사를 의미할 때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나 순국선열이라고 하진 않죠. 일본의 지배를 반대하며 독립운동을 했지만 정작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오로지 후세에라도 광복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분들이기에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추가로 순국선열이라고 하면 호국영령이라는 단어도 따라오기 마련인데요. 호국영령(護國英靈)은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은 영혼들을 의미합니다.
2. 순국선열의 날 역사 알아보기
순국선열의 날이 맨 처음 지정된 것은 1939년인데요.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제 31회 임시총회에서 지정천 등 6인의 제안에 11월 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합니다.
왜 그 날짜라고 궁금해 하실 분들이 계실 텐데요.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짜가 1905.11.17. 이기 때문에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이지만 역사에서는 실질적인 망국일(亡國日)을 이때로 보고 있기 때문에 순국선열의 날도 이때로 지정한 것이죠. 을사늑약은 외교권 박탈되고, 통감부가 설치되어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사건이었죠.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까지는 임시정부 주관으로 행사를 진행했으나 광복이후인 1946년부터는 민간단체에서 진행했고, 1962년~1969년까지는 국가보훈처에서 진행을 합니다.
그러나 다시 1970년~1996년까지 민간단체에서 6월6일 현충일에 포함하여 행사를 진행했죠. 하지만 순국선열들의 그 숭고한 정신을 더 계승하기 위해,
1997년 5월 9일에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고, 정부기념일로 바뀌어, 1997년부터 정부 주관 행사로 진행돼 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순국선열의 날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는데요. 순국선열중 누가 더 대단하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가장 유명한 분 중 한명이 바로 유관순 열사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내 손톱이 빠지고, 귀와 코가 잘리고,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유일한 슬픔입니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어린 나이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과연 그 당시 사람이라면 이런 행동,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감히 그렇다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러므로 순국선열의 날을 기념하여 호국영령을 기리고 순국선열에 대한 진정한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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